(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기자 = '개인정보 보호가 먼저냐, 정당한 법 집행이 우선이냐.'
국내에서 카카오톡 사태로 개인의 디지털 정보 보호와 수사기관의 법 집행이 충돌하는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미국에서도 비슷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갈등은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미 국가안보국(NSA)의 무차별 개인정보 수집 실태가 알려지면서 사이버 사찰 논란이 불거지자 애플과 구글 등 거대 정보기술(IT) 업체들이 고객의 불안을 잠재우고자 보안 강화에 나서면서 불거졌다.
애플이 지난달 18일(현지시간) 암호를 모르면 아이폰에 저장된 정보에 대한 접근을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 새 운영체제를 발표한 것이 발단이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는 당시 "고객 신뢰가 애플 임직원들에게는 모든 것"이라며 개인 정보 보호에 대한 의지를 강조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만드는 구글도 조만간 출시되는 새 운영체제에 애플과 유사한 형태의 프라이버시 보호 기능을 탑재할 예정이다.
그러자 미국 사법당국이 발끈하고 나섰다.
제임스 코미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12일 방송된 CBS '60분'에 출연, 보안이 강화된 아이폰을 '영장이 있어도 열지 못하는 트렁크가 있는 차'에 비유하며 '법을 초월하는 기기'라고 지칭했다.
그는 "납치나 테러와 관련돼 있다고 의심돼 영장을 발부받았는데도 스마트폰을 열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 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애플과 구글 등의 보안 강화 조치는 현행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어 사법당국도 어쩔 수 없다.
더욱이 이런 상황은 미국 정부가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IT업체들로선 정부의 개인정보 수집에 대응해 보안을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인터넷 보안업체 F-시큐어의 연구책임자인 미코 히포넨은 13일 IT전문매체 '더레지스터'에 "거대 IT기업들은 범죄자뿐만 아니라 자국 정부의 공격에도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또 법적으로 스마트폰 소유자에게 암호를 넣도록 강제할 수 있느냐를 놓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영장을 제시하면 이에 응해야 한다는 주장과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헌법적 권리가 있으니 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반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미국 법원의 판결도 엇갈렸다.
미국의 디지털권리 옹호단체 EFF에 따르면, 2012년 1월 콜로라도 지방법원은 부동산 사기사건과 관련해 피고가 압수된 컴퓨터 암호를 풀도록 강제할 수 있다고 판결한 반면, 그해 3월 애틀랜타 항소 법원은 정부가 아동 음란물 사건의 용의자에게 컴퓨터 암호를 풀라고 강제할 권한이 없다고 판결했다.
연방검사를 지낸 미국 조지타운대의 오린 커 교수는 "진술거부권이 불리한 증거의 암호 해독을 거부할 권한까지 보호한다고 보지는 않지만 논란이 있다면 의회가 이 부분을 명확하게 한 새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